아이패드가 발표된지도 23시간이 다 되어간다. 아마도 이 글을 마칠때쯤이면 24시간에 가까워질지도 모르겠다. 사실 새벽에 아이패드의 출시를 보며 느낀 감정은 실로 복잡했다. 약 2년여에 걸친 애플 생활을 통해서 개인적으로 애플의 충성도는 매우 높아진 상태였고, 아마 어느정도 수준이면 '역시 애플! 역시 스티브잡스!'라고 외치며 환호하고 있었을것이 분명했다. 무척 기대하고 본 영화가 기대 때문인지 그저 그렇다고 느끼는 것마냥 아이패드는 애물단지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정신을 차리고 다시금 곱씹어보니 애플의 승부수는 아이패드가 아니였다. 아이패드는 그저 새로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커스터마이징 된 툴이였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애플 유저들은 OSX 기반의 아이패드를 기다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도 그럴것이 맥북에어는 너무 비싸고 맥북이나 맥북프로는 들고 다니기에 무게가 조금은 부담스러울수도 있다. 타블렛 제품으로 나온다고 루머는 공식화된 상태에서 다른 타블렛처럼 그림도 그리고 스크린에 필기도 하는, 타 운영체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능들을 맥 OS 운영체제 안에서 아름다운 모습으로 구현되기를 바랬고, 아이맥이나 맥북으로 만든 키노트를 가볍게 들고가서 프리젠테이션 할 수 있는, 수업시간에 강의를 녹음하고 받아적을 수 있는.. 무언가를 바란 것이 사실이다. '그런게 타블렛이 아니면 대체 무엇이 타블렛이란 말인가?'라는 명제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아니 빠져나오기 싫었다.
스티브잡스는 이런 예측을 보기좋게 부셔버렸다. 아니 아예 이런 그림은 생각지도 않았다고 말하는게 정답일 것이다. 애초에 펜으로 쓰는 타블렛은 생각지도 않았고, OS X 기반은 논외였다. 만약 내 바람데로 제품을 출시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우선 맥북에어 라인업과의 충돌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맥북에어의 주된 용도는 작업보다는 프리젠테이션이나 외부에서 많은 작업을 하는 사용자를 타겟으로 하고있다. 성능을 중시하는 사용자라면 맥북프로를 사지 절대로 같은돈을 주고 맥북에어를 사지 않는다. 휴대성을 제외하면 가격대 성능비가 좋은 제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패드가 OS X 기반으로 나오고 무게도 더 줄고, 키노트 등의 기능을 모두 이용할 수 있다면? 아마도 맥북과 아이패드 조합 또는 아이맥 아이패드 조합으로 매킨토시를 구매할 가능성이 높다. 그럼 애플은 맥북에어라는 시장을 버려야할지도 모른다. 맥북에어의 시장은 맥 운영체제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유인하는 시장이지 타 운영체제의 사용자를 유인하는 시장은 아니기에 매킨토시 유저사이에서의 제살 깎아먹기의 이동이 주가 될 것이다. 그리고 과거부터 누누히 잡스가 그랬던 것 같다. "우리에게 타블렛은 필요없다."라고 말이다.
그런 스티브잡스가 타블렛을 만들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의 인생에서 중요한 제품이 될거라는 얘기도 했다고 전해졌다. OS X를 설치한 타블렛이 그의 인생에서 중요한 제품이 될 수 있을까? 그의 인생에서 가장 위험이 높아서 중요하다는 의미가 아니라면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아이패드를 구상하게 된 것은 아마도 아이팟터치, 아이폰을 통해 앱스토어라는 어마어마한 컨텐츠 시장의 성공과 그로 인해 다른 시장 진입자들을 철저하게 무력화시킨 막강한 힘을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구축하고 싶어졌기 때문이였을 것이다. 마침 전자책 시장은 아마존의 킨들로 새로우면서 성공한 시장으로 만들어졌다. 과거 Mp3도 그랬다. 단순히 Mp3로 시작한 아이팟은 아이팟터치가 되며 Mp3를 넘어서는 기계가 되어버렸다. 단순히 전자책 시장이지만, 아이패드는 전자책을 넘어서는 기계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하였을 것이다. 왜? 애플이니까. 앱스토어를 구축한 전례가 있으니까. 그리고 그런 부분의 최고의 노하우는 애플만이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아이패드가 출시되기 전에 출판 공급업체와의 계약이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건 사실로 밝혀졌다.
아이북(iBook)이라는 새로운 어플이 등장했다. 아이패드를 지원하는 이 어플은 킨들처럼 서적을 구매할 수 있는 시장을 제공하고 있다. 아마도 초야에 재능있는 다양한 작가들이 등장하게 될 것이고, 과거 개발자들과 같이 수익배분을 통해서 작가들이 좀 더 수월하게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게 될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하드웨어의 성능을 향상시키고 전자책이 아닌 전방위 엔터테인먼트 머신으로 격상시키면서 개발자들에게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새로운 플렛폼을 제공하였으며, 운영체제또한 특별한 교육없이 기존의 경험만으로 개발이 가능하도록 아이폰 OS를 사용하였다. 아마 엄청난 속도로 아이패드에 대한 어플리케이션도 등장하기 시작할 것이다.
애플의 아이패드 발표 당일 주가의 흐름이 말해주듯, 아이패드는 하드웨어로서의 특별한 매리트를 청중에게 어필하지 못했다. 스티브잡스의 키노트가 재미없어서가 아니다. 사소하다고 생각되는 어플리케이션이나 인터페이스를 제외하고는 그저 커진 아이팟터치로 보일 뿐이였다. 앞서 언급했듯이 나와 많은 사람들이 기대했던것은 기존에 없는 혁신적인 무언가를 원했던 것이였기 때문이였다. 혁신적인 장치. 혁신적인 소프트웨어. 아이패드는 그 둘 모두를 그렇게 외면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어떤 시점부터 주가가 치솟기 시작했다. 바로 가격이 나온 시점이였다.
아마존의 킨들은 489$로 전자책과 관련된 기능을 담고 있으며, e-ink를 사용하기 때문에 컬러 디스플레이가 아니다. 스티브잡스는 넷북을 타겟으로 발표를 진행하고 있었기에 가격에 대해서도 저렴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저렴해도 700달러 정도겠지... 싶었다. 요즘 넷북은 말만 넷북이지 노트북이나 마찬가지다. 초기 넷북은 저렴한 프로세서에 저용량의 SSD를 달고 저렴한 가격에 인터넷이랑 간단한 문서작업을 한다고 나왔지만, 사용자들이 요구를 반영한다고 고용량 HDD를 달고, 시디롬 없다고 불편하다고 내장시키고, 이것저것 붙여대다보니 결국 가벼운 노트북이 되어가고 있었다. 넷북이 100만원이 넘고 있는 걸 보고 있노라면.. '왜 저걸 넷북으로 부르는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999$라는 가격이 표시되었을때 장내는 싸늘했다. '스티브잡스가 미쳤구나.'라고 생각한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499$'라는 가격이 나타났을때 주가는 폭등했다. 왜냐고?
킨들이랑 10$차이. 용량은 킨들의 배가 넘고, 칼라 디스플레이에, 전자책 말고도 인터넷, 일정관리, 사진, 음악, 비디오, 게임 등을 할 수 있는데다가 아이팟터치에서 쓰던 어플리케이션을 모두 이용할 수 있는 기계. 전자책 분야에서 최고의 인기를 달리고 있는 킨들을 단돈 10$ 차이라는 금액이 한없이 초라하게 만들고 있었다. '킨들은 e-ink를 장착한 전자책 전용 단말기야'라는 생각으로 애써 외면하려해도 지원되는 다양한 컨텐츠를 고려하면 허리케인 수준이였다. 심지어는 킨들을 제 값주고 사는게 혹시 사기당하는게 아닐까 싶기까지 했다. 게다가 넷북이랑 비교하는것도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사실 넷북은 인터넷하고 문서작업하는 용도로 저렴하게 만든 노트북인자나'라고 생각하게되고, 아이패드는 인터넷과 문서작업의 용도를 모두 지원하고 있었다. 게다가 아이폰OS를 채용하여 속도가 엄청나게 빨랐다. 저렴한 하드웨어를 사용해서 낮은 퍼포먼스로 눈시울을 적시던 넷북과 비교하면 아이패드의 속도는 노트북이 부럽지 않은 수준이였으니까... 그러면서도 넷북을 사용함으로서 소비자가 기대하는 기능들은 대부분 지원을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아이팟터치의 가격이 얼마인 줄 아는가? 8G 199$, 32G 299$, 64G 399$이다. 아이패드는 16G 499$, 32G 599$, 64G 699$이다. 3G망을 사용하면 130$가 각각 더 붙기 때문에 최고가가 829$가 된다. 그리고 맥북이 999$, 학생할인을 받으면 899$이다. 가격대가 겹치지 않으면서 시장도 나름대로 적절한 균형과 목적성을 유지하고 있다. 휴대가 필요하면 저렴한 아이팟터치로, 큰 화면과 일부 노트북의 기능을 활용하고 싶다면 아이패드를, 그리고 노트북을 쓰고 싶다면 맥북으로 가라는 의미가 된다. 이 가격책정은 한 편의 드라마와 같다. 아마도 가격은 당분간 이 상태로 유지되면서 기종만 바뀌는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들 정도이다.
정리하자면, 아이패드는 타블렛이라는 기계로 보면 안된다. 컨텐츠 사업을 위한 충실한 보조장비라고 보는 것이 옳다. 애플은 모바일 회사로서의 영향력에 대해 연설을 했지만 내 생각에는 컨텐츠 회사로서의 영향력을 위해 한 발 한 발 나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경쟁사들 역시 그 점을 알고 있겠지만 앉아서 당하고 있을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이 분야의 애플의 능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애플이 제조회사에서 무형의 가치를 현금화 시키는 회사로 성장해가는 것을 보면서 미래의 사업의 방향은 어쩌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어 가겠구나 하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된다. 대한민국에도 이런 사고를 하고 이윤을 내는 기업이 빨리 등장하기를 진심으로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