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욕의 추억’ 남긴 AG 한국야구

[세계일보 2006-12-03 09:12]    


[스포츠월드닷컴=심현석 기자] “혀를 깨물고 죽고 싶은 심정...”

아니 방송에서, 그것도 모두가 여유로운 토요일에 어떻게 이런 심한 표현을...전후사정 어떠한 사전정보 없이 위 말만 따로 떼어서 들으면 무슨 엄청난 일이 생긴 듯한 발언이다. 드라마속 독립투사마저 연상케 한다.

그러나 수많은 방송중계를 담당했던 베테랑 송인득 아나운서의 이 클로징 멘트는 정확했다.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는 일이생생하게 전국전파를 탔다. 밥먹듯이 “정규방송 관계로..”를 남발했던 야구중계가 이날은 일본의 끝내기 홈런이 터질 때까지묘하게도 끝까지 방송됐다. 명승부를 연출하는 아시안게임이기 때문인가. 그러나 이 경기는 한국이 이겨도 결코 명승부로 포장할경기가 아니었다.

한국야구가 2일 사회인 야구선수들로 구성된 일본에 패하며 충격을 안겨줬다. 일본 사회인 야구도 수준이 높아서, 전력분석 시간이모자라서, 해외파도 없고, 선수들의 컨디션이 정상이 아니어서...어떻게 해서든 각종 어구들과 일말의 완충조건들로 패닉상태를벗어나고자 해도 쉽사리 마음은 가라앉지 않는다.

거기에 MVP·투수 3관왕·타격 트리플크라운·구원왕 등 올시즌 프로야구를 상징하는 각종 타이틀이 대거 출동한 한국과 사회인리그가 늦게 끝나 지난달 29일에 대표팀 전체가 모였다는 일본 감독의 말, 알라이안 구장의 바람은 양팀 모두에게 불었다는 점,일본은 경기 후반 내보낼 투수도 마땅치 않았던 데다 프로입단을 앞두고 있는 일부의 선수들도 여전히 선수등록상 ‘아마추어’ 였다는것 등은 더 이상 한국야구 옹호를 힘들게 만든다.

경기속으로 들어가보니 상황은 대만전 판박이처럼 심각하다. ‘번트 특공대’의 일념으로 집중적인 연습을 했던 번트는 연이은 실패로오히려 발목을 잡았고 이를 대체하는 팀베팅도 지지부진, 꼭 필요한 진루타와 적시타는 실종선고를 받았다. 점수를 주고 흐름을 끊지못하다 추가실점이 계속돼도 마운드 역시 그때처럼 변화가 없다.

귀신도 모르는 것이 투수교체라지만 ‘귀신같은 작전야구’로 한국시리즈를 수차례 제패한 감독, 동시에 그 감독은 선수시절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서 ‘귀신같은 번트’로 통쾌하게 일본을 침몰시킨 아이콘이었다는 사실은 더욱 가슴을 아프게 한다. 더구나최소실점으로 이겨야 하는 경기가 후반까지 끌려가는 난처함으로 변해 ‘혹시나 이 게임을 잡아도 좋은 평가는 받을 수 없는 생각’을미리 만드는 ‘대략 난감’. 박진만의 호수비만이 유일한 볼거리였다면 그런 야구는 팬서비스에서도 좋은 점수가 안나온다.

경기외적으로 들어가봐도 다르지 않다. 언제부터인가 ‘금메달=군대 안가도 되는’ 이라는 등식이 ‘야구=멘탈게임’ 이라는 등식에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첫 경기였던 대만전을 패해 금메달에 대한 의욕이 떨어져 성취동기에 균열이 생긴 것인가. 이제한국야구에 있어 병역면제는 참가와 불참, 대표팀 선수구성에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게 됐다.

물론 병역면제는 선수들 입장에서 경제논리상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병역혜택을 선물” 한다거나 “병역혜택 받을 기회를놓쳤다” 등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은 곤란하다. 이는 국방의 의무를 피하는 것을 혜택이나 선물로 동일시 할 수 없는 이유, 이미한국야구는 2004년 대규모 병역비리로 팬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기 때문이다.

2003년 550만명을 동원했던 영화 ‘살인의 추억’은 ‘살인’과 ‘추억’이라는 결합되기 힘든 단어를 조합했다.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한다는 추억의 사전적인 의미로 볼때는 무리없는 영화제목이었지만 ‘좋았던 일’을 떠올린다는 추억의 일반적측면에서는 이례적. 한 네티즌은 “몇년후 일본 뉴스엔 오늘의 야구경기가 일본의 명승부로 나올 것”이라는 뼈아픈 추억을 예상했다.2006년 12월 2일 한국야구는 정말로 그럴만한 ‘치욕의 추억’을 남겼다.

스포츠월드닷컴 심현석 기자 (hss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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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e & Soohy 2006. 12. 3.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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