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레카] 승자의 저주 / 김병수
[한겨레 2006-06-14 19:45]    

[한겨레] 고대 에피루스의 피루스 왕은 기원전 279년 로마군과 전투에서 승리했지만, 너무 많은 병사를 잃었다. 그는 “이런 승리를 한번 더 거뒀다간 우리가 망한다”고 했다. ‘피루스의 승리’는 ‘상처뿐인 승리’란 뜻으로 쓰인다.

리처드 탈러는, 경매에서 지나치게 높은 값을 써낸 탓에 이기고도 진 것만 못한 경우를 맞는 일이 있다며, 이를 ‘승자의 저주’라고 불렀다. 본질 가치가 1천만달러인 유전 경매에서, 어떤 기업이 유전 값어치를 과대 평가해 2천만달러에 낙찰받았다고 치자. 그 기업은 입찰에선 승리하지만 큰 손해를 본다.

현실 세계에서도 승자의 저주는 심심찮게 목격된다. 1990년대 초 미국의 에이티앤티(AT&T)는 엔시아르(NCR)란 기업을 인수합병이 발표될 때보다 두 배 넘는 값에 인수했다가 4년간 30억달러 가량 손해봤다. 2000년 영국 정부가 한 아이엠티2000 주파수 경매에선 통신업체들이 과당경쟁 끝에 무려 38조5천억원에 낙찰받았다가 비용부담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연예인이 입던 옷이야 얼마에 낙찰받건 자신이 좋아하면 그만이나, 기업 세계에선 시장가격보다 비싼 값에 무리하게 낙찰받으면 손해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경영자가 낙관적 직관 아래 움직이거나, 경쟁기업을 제치고 보자는 욕심을 가지면 이런 일이 생기기 쉽다고 한다.

대우건설, 엘지카드 등 매물로 나온 기업들의 값이 애초 매각 계획이 잡혔을 때보다 두배 가까이로 올랐지만 서로 먹겠다고 달려들고 있다. 외환은행도 마찬가지였다. 국민은행은 하나금융지주를 제치고 외환은행을 따냈지만, 6조여원이란 천문학적 대금을 치르게 돼 있다. 금융계에서는 그만한 시너지가 있을지 희의적이다. 승자의 축복은 외환은행을 팔아 4조여원의 이익을 얻을 론스타가 챙기고, 저주는 국민은행이 안는 꼴이 될 수도 있다.

김병수 논설위원 byung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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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e & Soohy 2006. 11. 20. 10:57
[광화문]승자의 저주…얻으려면 버려라
[머니투데이 2006-08-03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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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홍찬선 증권부장]

상식이나 기존의 이론과 다른 일이 벌어질 때 역설(Paradox)이라고 한다. 가치의 역설, 기펜의 역설, 레온티에프의 역설, 절약의 역설 등…. 경제학에선 수없이 많은 역설이 있다. 하지만 역설은 지금까지의 지식으로 설명할 수 없을 때 붙여지는 이름일 뿐, 이론이 발달되면서 점차 사라지게 된다.

물의 사용가치는 다이아몬드보다 훨씬 크지만 다이아몬드 가격이 훨씬 비싼 것에서 유래된 ‘가치의 역설’은 교환가치라는 개념이 도입되면서 해소됐다. 개발도상국은 저축이 미덕이지만 선진국은 소비가 미덕인 역설도 케인즈의 유효수요이론으로 설명됐다.

21세기는 ‘역설의 시대’다. 정보통신기술(IT)의 발달 등으로 사회 변화가 빠르다 보니 어제 익힌 지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이 수없이 등장하는 탓이다. 약한 게(Software) 강한 것(Hardware)보다 더 높은 가치를 갖는다. 눈에 보이는 유형자산(Tangibles)보다 보이지 않는 무형자산(Intangibles)이 기업경쟁력을 좌우한다. 브랜드 파워와 기업의 명성(Reputation) 및 인재(Talent)가 기업의 지속적 성장과 발전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들이다.

눈에 보이는 것에 정신이 팔리다보면 중요한 것을 놓쳐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엄청난 수해(水害)를 입은 현장이 TV 화면에서 사라지는 순간 많은 사람들의 인식에 사라지지만 그들의 고통은 없어지는 게 아니다. 눈에 띄는 바퀴벌레 몇 마리를 죽이는 것은 오히려 보이지 않는 바퀴벌레의 번성을 가져오게 마련이다.

위기는 눈에 보이기 시작하면 이미 대응하기 늦은 경우가 많다. 주식이나 부동산 등 자산 가격이 본질가치보다 비정상적으로 급등하거나(자산버블), 가격이 단기간에 급격하게 등락하며(가격변동성확대), 상황을 체크하고 통제할 수 있는 파워타워가 흔들리는(리더십 부재) 등의 위기 신호가 왔을 때 대비책을 마련해야 만시지탄의 후회를 하지 않는다. 교차로에서 신호가 바뀐 것을 보고 뛰면 이미 늦으며, 빨간 신호 때 뛰어야 파란 신호가 바뀌면서 건널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급하고 중요한 일은 서두르는 것보다 느긋하게 처리하는 게 바람직하다. 아무리 급해도 바늘허리에 실을 매어 쓸 수는 없으며, 벼 이삭이 늦게 편다고 이삭을 강제로 뽑는 것은 농사를 망치는 일이다. 골프공을 멀리 보내려면 세게 치기보다 부드럽게 스윙해야 한다.

자신을 낮출 때 높아지지만, 스스로 공치사하면 응당 받아야 할 존경도 사라진다. 실패를 칭찬해줘야 남보다 앞서는 독특한 혁신을 이룰 수 있지만, 잘 하는 것 10개가 있어도 잘못한 것 하나를 들춰내 뒷다리를 잡으면 조직의 탄력은 줄어들고 경쟁력은 떨어진다.

왕건처럼 송도를 버릴 줄 알아야 고려를 세울 수 있다. 궁예처럼 초심을 잃고 관심법에 집착을 부림으로써 애써 일군 나라를 송두리째 빼앗기는 경우도 수없이 많다. 애니메이션 영화 ‘카’(감독; 존 라세터)에서 주인공인 라이트 맥퀸은 스스로 1등을 버리고 어려움에 처한 경쟁자를 도움으로써 경기에선 졌지만 실제로는 이기는 영웅이 됐다.

버림의 미학을 실천하려면 자신과 신념이 있어야 한다. 작은 실패와 지금의 양보를 감내해야 미래의 큰 선물을 차지할 수 있다. 지금의 승리에 도취하면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에 빠지기 쉽다. 역설의 시대인 21세기에 역설을 정설로 바꿀 수 있는 준비된 사람들이 많아질 때 우리 사회는 과거의 망령에서 벗어나 미래를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

홍찬선증권부장 h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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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e & Soohy 2006. 11. 20.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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