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열도에서 가장 큰 섬, 혼슈의 허리쯤에 위치한 나고야는 국보급 투수 선동열이 선수생활을 마감하기까지 몸 담았던 ‘주니치 드래곤즈’의 홈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도시다. 세계적으로는 도요타자동차의 본사와 생산 거점들이 모여있는 아이치현의 중심지로 더욱 유명하다.
  연수단 일행이 나고야로 가기 위해 첫 발을 내디딘 관문은 지난해 개장한 중부(中部) 국제공항. 도요타자동차와 나고야철도, 주부전력 등 민간기업이 50%를 출자해 아이치현 도코나메시 앞바다의 매립지에 건설한 이 공항은 일명 ‘도요타 공항’이라고 불린다. 많은 투자금액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됐던 최초 설계를 도요타가 재검토한 후 10% 절감된 금액으로 공항을 건설할 수 있었고, 운영에서도 철저하게 ‘카이젠’(개선)을 접목시켜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이 공항의 건설비는 간사이 공항의 40%, 착륙료는 나리타 공항의 70%에 불과하다고 한다.
  도요타 생산방식(TPS)은 자동차 제조뿐 아니라 여러 사업 분야에 적용해 원가절감을 이뤄낼 수 있는 생산방식임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나고야로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연수 참가자들은 이번 벤치마킹에 임하는 각오를 밝혔다.
  건기 생산1팀 제관4직 김영덕 사우는 “철저히 낭비를 제거한 도요타 생산방식에 대해 들으며 ‘과연 어느 정도일까’ 궁금했는데, 이제 직접 확인해보게 됐다”며 큰 기대감을 드러냈다. 건기 자재관리팀 물류3직의 강척준 사우는 “선동렬 감독이 성공을 거뒀던 나고야에 왔으니, 나도 도요타에서 뭔가 얻는데 성공하겠다”고 말했다. 산차 생산1팀 시운전직 김용주 직장은 “과거에 시도했던 생산혁신 방식들이 왜 실패했는지, 그 원인을 이번 연수를 통해 알아보겠다”고 포부를 밝혔고, 건기 생산2팀 조립5직 박충남 직장은 “벤치마킹이란 부끄럽지 않게 훔치는 것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먼 곳까지 왔으니 뭐라도 꼭 하나 훔쳐가겠다!”고 각오를 밝혀 박수를 받았다.
  발표가 끝나갈 즈음, 버스는 서서히 나고야 시내로 진입하고 있었다. 창 밖으로 나고야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자 나고야 역이 1층에 위치한 ‘JR센트럴 타워스’가 보였다. 그 맞은편에선 도요타 신사옥의 건설이 한창이었다. 센트럴 타워스보다 높게 지어져 나고야를 상징하는 랜드마크가 될 도요타 빌딩은 내년 완공 예정으로, 도쿄(東京)에서 근무 중인 국제부문 사원 2,000여명이 대거 옮겨올 예정이라고 한다.


  메이지 유신 전부터 면직물과 도자기 집산지로 상업이 발달한 나고야는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을 계기로 군수산업 특수를 맞으며 금속, 화학, 조립공업(組立工業) 등에서 큰 발전을 이루었다. 도요타의 탄생과 발전은 이런 나고야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시내에 위치한 ‘도요타 산업기술기념관’. 빨간 벽돌의 이 건물은 어머니를 편하게 해드리기 위해 자동 방직기를 만들어낸 일본의 발명왕 도요다 사키치의 방직 공장이었다. 도요타는 기업의 전신이 된 방직 공장을 전시관으로 만들어, 그들의 산업 유산을 후세에 전하고 있었다. 도요타의 역사와 DNA가 담긴 이 곳은 도요타 관련사뿐 아니라, 자동차와 무관한 많은 일본 기업들이 신입사원 선발 후 반드시 연수를 보내는 코스라고 한다.
  기념관 로비에 들어서자 거대한 ‘환상직기’가 일행을 맞았다. 도요다 사키치는 1906년 발명한 이 환상직기로 19개국 특허를 획득, 특허권을 영국에 되팔아 아들 도요타 기이치로의 자동차 사업을 도왔다고 한다.
  기념관 내 섬유기계관에서는 배틀로 직물을 짜던 시절부터 컴퓨터를 이용해 균일하고 정밀한 방직이 가능하게 되기까지 방직기의 자동화 과정이 소개되었다. 자동차관에서는 도요타 최초의 양산 모델인 AA형 자동차에서부터 현재 생산 공장에서 사용되는 조립 방식의 시연까지, 도요타의 사업 개척 역사와 현주소를 상세히 보여주고 있었다.



  기념관을 나선 연수단은 생산 현장 견학을 위해 도요타 공장들이 모여 있는 도요타시를 향했다. 한국과 다를 바 없는 일본의 시골 풍경을 보며 40분쯤 달리자 버스는 한적한 도요타시로 들어섰고, 홍보관인 ‘도요타 회관’ 앞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여기서부터 전문 안내원이 버스에 탑승해 모토마치 공장(자동차 조립)과 가미고 공장(엔진 조립)을 안내했다.
  도시의 이름을 딴 기업은 많지만 기업 이름을 딴 도시는 흔치 않은 터라, 어떻게 도시 이름이 도요타시가 되었는지 궁금했던 차에 안내원이 설명을 해주었다. 아이치현 고로모시는 1938년 도요타자동차를 유치한 후, 도요타가 지역 발전과 역사를 함께 해오며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하게 된 것을 기념해 1959년 도시명을 도요타시로 변경했다고 한다. 인구 40만명 중 30여만명이 직간접적으로 도요타 밥을 먹고 산다고 하니, 어쩌면 도시명을 다르게 붙인다는 게 오히려 이상하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안내원은 일본 내 15개 도요타자동차 공장 중 12공장이 아이치현 내에, 그 중 10개가 도요타시 근처에 모여있다고 소개했다. 각 공장간 거리는 15~30분 정도로 매우 가까워서 생산한 부품을 이동시키기에 편리하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대형 고급승용차 8개 기종을 혼류 생산 중인 160만평의 모토마치(Motomachi) 공장은 월 8,300대, 매일 460대 가량을 생산해내고 있다. 프레스와 용접, 도색을 거친 3만개의 부품이 이곳에 들어와 20시간 만에 한 대의 자동차가 되어 나간다.
  공장 내부는 50년 된 공장임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깨끗했다. 일렬로 빽빽하게 들어선 생산 라인에서는 작업자들이 곁눈질 한번 하지 않고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모토마치 공장에서는 고객 요구의 변화에 대응하며, 높은 생산성과 품질, 짧은 납기를 실현하기 위해 도요타 생산방식(TPS)을 철저히 시행 중이라고 한다. 필요한 물건을 필요한 때에 필요한 만큼만 생산하는 JIT(Just In Time)와 자기 공정 내에서 완벽한 품질을 구현하는 JIDOKA 등 TPS의 핵심 개념이 적용된 사례는 공장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생산 라인 치고는 짧아 보이는 컨베이어 벨트. 작업자는 칸반(간판)이 붙어 있는 부품 상자들을 컨베이어 양 쪽에 줄 세운 후, 부품 카트 하나를 컨베이어에 올려놓고 각 상자 옆을 지나가면서 필요한 부품을 꺼내 담고 있었다. 크기가 작은 부품을 키트 마샬링하는 작업이었다.
  한편 마샬링이 안 된 부품은 각 차체의 본네트에 붙어있는 ‘지시 삐라’를 보고 조립을 한다. 종이로 된 삐라에는 부품 종류가 기호와 숫자로 적혀있는데, 라인 옆의 부품박스에도 동일한 기호가 표기돼 있어서 어떤 부품을 사용하면 되는지 쉽게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생산 라인에서는 문짝이 없는 자동차 차체들이 흘러가고 있었다. 작업자의 차체 조립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고 도어의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도색 후 도어(door)를 떼낸 뒤 모든 조립이 완료된 후 다시 장착하는 ‘도어리스 공법(Doorless)’을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도요타 현장 직원이 직접 제안했다는 ‘웨건 대차’는 작업자가 부품을 가지러 갈 필요가 없도록 일정 구간을 자동차와 함께 움직이며 볼트나 공구 등을 공급해주고 있었다. 이번 견학에서 직접 볼 수는 없었지만, 작업자가 차 내부 조립 시 신속하게 드나들 수 있도록 만든 ‘라꾸라꾸 시트’라는 작업 의자도 작업자의 제안으로 탄생한 모토마치 공장의 발명품이라고 했다.
  도요타에서는 1951년부터 ‘창의연구제도’라는 이름으로 직원 제안 제도를 운영 중인데, ‘도어리스 공법’이나 ‘웨건 대차’과 같이 제안 중 99%가 생산 현장에 적용되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에는 총 60만건, 1인당 연간 11건 꼴로 제안이 되었고, 회사는 제안 내용에 따라 900엔, 우리 돈으로 50만원까지 상금을 지급하여 보상을 하고 있다.


  연수단 일행이 도어 조립 공정 옆을 지나고 있을 때, ‘안돈’이라 불리는 전광판에 갑자기 노란색 불이 켜졌다. 조립이 잘 못 되었거나 부품이 모자라는 등 문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작업자 누구라도 ‘히모’라 불리는 흰 끈을 당기면, 경고음이 울리며 어느 위치에서 히모를 당겼는지 안돈에 표시되는 ‘라인스톱시스템(Line Stop System)’을 생생하게 접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안내원은 “안돈에 노란 불이 켜지면 리더(현장 관리자)가 해당 공정에 달려가 작업자를 도와주지만, 그래도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면 빨간 불로 바뀌고 생산 라인이 멈추게 된다”고 설명했다.
  안돈 한쪽에는 라인스톱으로 인해 생산이 멈췄던 시간이 표시되어, 오늘 얼마나 잔업을 해야 하는지 나타내주고 있었다. 도요타는 24시간 2교대로 공장을 풀 가동하기 때문에, 더 많이 생산하고 싶다고 잔업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정해진 시간 동안 생산해야 할 양을 채우지 못했을 때 이를 잔업으로 채우는 방식인 것이다. 따라서 잔업 시간도 업무 교대가 이뤄지기 전 여유시간인 주간, 야간 각각 45분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엔진 서브조립 라인을 거의 빠져나올 때쯤, 안돈이 켜지지 않았는데도 라인이 갑자기 멈추고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우리 일행을 보며 안내원은 “35분에 한번씩 라인을 잠깐 멈추고, 간판과 품질을 체크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라고 했다. TPS의 철저한 운영과 완벽한 품질 구현을 위한 도요타의 꼼꼼한 계산이 엿보였다.


  종신 고용제를 채택하고 있다는 사전 지식과 달리 모토마치 공장과 가미고 공장의 생산 현장에서는 나이 많은 작업자를 거의 발견할 수 없었다. 대부분이 20~40대로 보이는 젊은 인력이고, 그 중에는 아직 앳된 티를 벗지 않은 여성 작업자도 여럿이다. 현장 작업자의 정년은 60세라는데, 그 많은 50대는 어디로 갔을까?
  도요타의 종신 고용은 무작정 평생 고용을 보장한다는 의미라기 보다, 전 직원을 탄탄한 근로의식과 기술력으로 무장시켜 철저한 ‘도요타식 인간’으로 육성함으로써 그들의 능력을 평생 활용하겠다는 의미다. 이 과정에서 바로 오랜 현장 경험을 가진 고령의 작업자들이 활약하고 있다. 그들은 생산 라인에서 일하는 대신 신입사원을 비롯한 현장 작업자들의 기술 교육을 담당하거나, 도요타 사업장이 있는 세계 곳곳에서 도요타 DNA와 도요타식 생산방식 TPS를 전파하는 ‘센세이(선생님)’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도요타의 다기능공 제도에 대해 묻자 안내원은 “도요타는 총 4개 레벨로 나눠진 ‘전문 기능 취득 교육’을 운영하면서, 궁극적으로 모든 작업자들을 전(全) 공정의 작업 및 보수 공정의 지도가 가능한 수준까지 레벨업시켜 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이렇게 육성된 직원들은 전문 지식과 기술을 토대로 완벽한 제품을 생산해내고, 끊임없이 ‘제안’과 ‘개선’을 실행함으로써 생산 현장의 혁신을 주도하고 있었다.


  도요타 사람들은 뛰어 다니면서 일을 한다. 작업자들의 마음가짐, 위기의식이 바탕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도 닥치면 얼마든지 잘 해 낼 수 있지만, 닥치기 전에 하는 게 중요하다.

  도요타 작업자는 부품의 이상 유무를 체크하지 않고 바로 조립을 한다. 사전 공정에서 불량이 없다는 가정 하에 자신의 업무만 하니, 생산성이 좋을 수 밖에 없다. 이는 공급되는 부품 자체가 100% 정품이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우리뿐 아니라 협력회사도 도요타의 생산 현장을 직접 눈으로 본다면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물류시스템이 잘 되어있다고 느꼈다. 특히 부품 납품에서도 JIT를 적용하여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만 납품 받기 때문에, 하루에 460대의 차량을 생산하지만 쌓여있는 부품 재고는 거의 없었다.

  현장에 큰 쓰레기 통이 하나도 없다는 점이 특이했다. 분유 통 크기만한 작은 쓰레기 통 여러 개를 두고, 철저하게 분리수거를 실천하는 모습을 보았다. 구석구석 정리정돈도 참 잘 되어 있었다. 사소하게 생각할 수 있는 정리정돈에서부터 도요타의 저력이 나온다는 것을 느꼈다.

  24명 중 7명이 현장 관리자라는 말에 여유인력이 너무 많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도요타에서는 “리더는 결원이 생길 때 업무를 대체하고, 작업자가 히모를 당기면 문제 해결을 도와주는 등 라인을 잘 돌아가게 하는 바쁜 사람”이라고 했다. 릴리프 인력의 다기능화와 로테이션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출저:두산인프라코어 인터넷 사보

by Joe & Soohy 2008. 4. 22.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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