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제 대졸자 64% "연봉 2000만원 안 돼도 좋다"
[중앙일보 2007-01-03 09:56]    

[중앙일보 임미진.김필규] 1일 오전 8시. 남모(31)씨는 컴퓨터 앞에 앉았다. 취업 사이트에 이력서를 올리기 위해서다.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중소기업에서 계약직 생산사원으로 일하다 한 달 전 계약기간이 끝나 퇴사했다. 연휴 내내 친지나 친구들도 만나지 않고 이력서만 썼다. 이력서에 희망연봉 1800만원, 계약직도 상관없다고 적어 넣다가 잠시 울컥했다. 충북에 있는 C대학 토목학과를 수석(4.5점 만점에 4.48)으로 졸업한 그다. "눈이 높은 것도 아닌데… 연락 한 곳 없는 걸 보니 경쟁자가 많은 모양이네요." 남씨는 한숨을 쉬었다.

새해 새 아침을 맞으며 많은 사람이 희망에 부풀어 있었지만 구직자들은 그날도 쉬지 못했다. 1일 주요 취업 포털 3사(커리어.잡코리아.인크루트)에 등록된 이력서는 모두 7000여 건. 지원자가 넘쳐나는 마당에 인재 정보를 검색하는 인사담당자가 많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올린 이력서다. 예비졸업생부터 경비원을 꿈꾸는 50대 퇴직자까지. 이들이 이력서에 담은 간절한 새해 소망은 단 하나, 일자리였다.

◆갈수록 낮아지는 취업 눈높이='취업이 안 되면 눈높이를 낮추라'는 얘기도 이제 통하지 않는다. 대전에 있는 4년제 대학에서 러시아어를 전공한 임모(23.여)씨. 새해 첫날부터 이력서 쓰는 데 3시간을 보냈다. 그가 적어낸 희망 연봉은 1600만원. 임씨는 "학과 동기 20명 중 취업한 친구는 절반뿐"이라며 "직장을 잡은 친구들도 1600만원 정도나 그 이하를 받고 계약했다"고 말했다. 그는 "언론에서 '구직자 기대수준이 너무 높아 사람 구하기 힘들다'고 말하는 인사 담당자를 보면 어느 나라 이야기인가 싶다"며 허탈해했다.

실제로 잡코리아에 1일 이력서를 올린 경력 2년차 미만의 4년제 대졸자(739명) 중 희망 연봉을 적어낸 595명을 분석한 결과 희망 연봉이 2000만원 이하인 구직자는 64.2%에 달했다. 연봉을 1600만원 이하로 받아도 좋다는 구직자도 열 명 중 두 명을 넘었다(23%). 잡코리아에 따르면 석.박사 출신 구직자의 평균 희망연봉도 2400만~2600만원대였다. 눈높이를 낮추기는 홍익대 전자공학과를 2월에 졸업하는 김은지(23)씨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하반기엔 대기업을 위주로 원서를 넣었지만, 지금은 중소기업을 주로 지원한다. "중소기업이라도 붙은 친구들을 보면 부럽죠. 넣어도 넣어도 떨어지니까 눈높이가 점차 낮아져요."

◆절박한 40~50대 구직자들=새해 구직 열기엔 40, 50대도 예외가 아니다. 자녀 등 가족이 딸려 있는 가장들이라 오히려 절박함은 더하다.

1일 취업포털 커리어에 이력서를 등록한 손귀진(40)씨는 다니던 구두 회사가 사실상 문을 닫으면서 1개월째 실직 상태다. 처음엔 "눈 낮추면 일할 데 없겠느냐"며 열의를 갖고 여기저기 이력서를 넣었다. 하지만 지원한 회사마다 연령 제한에 걸려 면접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지금껏 그에게 일자리를 제의한 곳은 두 군데. 월급 100만원 남짓한 스프링 공장의 단순 노무직과 일당 4만원을 준다는 물류운반직이다. "식당에서 일하는 아내의 수입(월급 120만원)으로 네 식구가 생활한다"는 손씨는 "새해에는 노무직이라도 해야 할 것 같다"며 한숨을 쉬었다.

새해 첫날 커리어에 이력서를 등록한 40대 이상 구직자는 150명. 전체의 9.3%에 불과하지만 대부분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가장이라는 점 때문에 절박함은 대졸자보다 더하다.

인크루트에 경비직으로 취업하고 싶다고 이력서를 올린 하모(59)씨는 "한번이라도 좋으니 면접을 보고 싶다"고 밝혔다.

임미진.김필규 기자 mijin@joongang.co.kr

by Joe & Soohy 2007. 1. 3. 10: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