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선통신기술이 세상을 바꾼다, 자유롭게…
[조선일보 2006-11-18 02:52]    

휴대폰으로 집 보일러 끄고켜고 … 몸의 미세한 변화 의료기관으로
주행중 공기압도 운전자에 전송

[조선일보 산업부기자]

장면 1.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진 초겨울 저녁, 회사원 김첨단씨는 집에 도착하기 15분 전 휴대전화로 자기집 내부를 살펴본다. 김씨가 집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뒤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자, 잠시 후 보일러가 저절로 켜지고 욕조에 더운 물이 채워지고 열려진 커튼이 스르르 닫힌다.

장면 2. 안순진씨가 저녁 준비를 위해 주방을 들어서자 냉장고가 갑자기 말을 건넨다. “달걀은 하나밖에 없어 수퍼마켓에 추가로 10개를 주문했고, 닷새 전 사둔 우유는 유효기간이 지났습니다.”

지금은 ‘홈 네트워크’ 기술을 알리는 아파트 광고에서나 나옴직한 광경이다. 하지만 머지 않은 미래 일상 생활의 모습이기도 하다. 다양한 기기와 사물이 언제 어디서나 네트워크로 정보를 교환하는 유비쿼터스(ubiquitous) 컴퓨팅 환경 덕분이다. 그런데 보일러·수도꼭지·달걀·우유는 어떻게 휴대전화·냉장고와 필요한 정보를 주고받는 것일까. 무선(無線) 통신 기술이 있기 때문. 무선 통신 기술 개발이 없다면 유비쿼터스 컴퓨팅 환경 구현도 불가능하다.


■다양한 무선 통신 기술이 속속 등장

유비쿼터스 시대엔 모든 사물이 지능을 갖추고 사람이나 다른 사물과 교신(交信)할 수 있다. 이처럼 사람과 사물, 사물과 사물이 교신하려면 근거리 무선 통신 기술이 뒷받침돼야 한다. 근거리 통신이란 가까이 있는 기기가 서로 다양한 정보를 주고받는 통신 기술이다. 근거리 통신은 사무실이나 가정 등 상대적으로 좁은 공간에서 고속 데이터 통신을 한다는 점에서 이동통신과는 다르다.

무선 통신 기술에는 블루투스, RFID(라디오 프리퀀시 아이디), ZigBee(지그비), UWB(초광대역), 그리고 최근 한국이 독자 개발한 ‘바이너리 CDMA’ 등이 있다.

이 중 가장 많이 알려진 기술이 블루투스다. 요즘 들어선 가방·호주머니에 휴대전화·MP3플레이어를 넣어둔 뒤 선이 달려 있지 않은 블루투스 헤드셋으로 통화를 하고 음악을 듣는 사람을 자주 만나게 된다.

블루투스는 1990년대 말 세계 전자·통신·휴대전화 업계의 대·중소기업 등 수천 개 업체가 함께 기술 활성화 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3~4년 동안 비용 문제 때문에 급속히 확산되지 못하다, 노키아가 휴대전화 핸즈프리용으로 적용한 2003년 이후 활성화됐다. 요즘은 GSM(유럽식 이동통신) 휴대전화의 50% 이상에 블루투스가 적용되고 있으며, 현재까지 휴대전화·MP3플레이어·PDA 등 모두 10억대가 넘는 IT 기기에 블루투스가 탑재됐다.

RFID도 상용화에 근접한 무선 통신 기술로 꼽힌다. RFID는 사물에 전자 태그(인식표)를 부착한 뒤 리더기(인식기)로 태그에 담긴 정보를 읽어내는 기술이다. 현재는 물류 관리, 버스 카드, 전자 화폐 등에 이용되고 있지만, 태그 가격이 내리는 2~3년 후엔 여러 분야로 확대 적용될 전망이다.

예를 들어, 미국 월마트는 1~2년 내 매장에서 판매되는 모든 제품에 태그를 부착, 소비자가 카트에 물건을 담은 뒤 계산대를 통과하면 자동 계산되는 최첨단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또 각국의 공항과 항공사는 RFID를 이용, 화물의 검색과 추적이 쉬운 수화물 시스템 구축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최근엔 블루투스와 비슷한 쌍방향 무선 통신 기술인 지그비와 UWB에도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지그비는 지그재그(Zig Zag)와 가장 경제적으로 통신한다는 벌(bee)의 개념을 도입한 새로운 통신 규격이다. 지그비는 우선 블루투스에 비해 전력 소모가 매우 작다. 또 기기와 기기가 1대1로 교신하는 블루투스와 달리, 하나의 기기와 수천 개의 센서를 동시에 제어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현재 지그비 기술 개발에 참여하는 ‘지그비 얼라이언스’에는 삼성전기·프리스케일·필립스·모토로라 등 전 세계 26개국 200개 이상의 기업이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대부분 빌딩이나 공장의 제어와 감시에 적합한 제품을 개발한다. 특히 삼성전기는 다른 회사보다 늦게 기술 개발을 시작했지만, 최근 크기가 작으면서 소비 전력도 낮은 지그비칩 개발을 끝내고 양산(量産)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UWB는 초기 군사적 목적으로 개발됐다가, 요즘 들어선 HD(고화질) 방송 등 대용량 데이터 전송 등의 목적으로 응용 분야가 확대되고 있다. 블루투스는 초당 전송 속도가 수 Mbps에 불과하지만, UWB는 수백 Mbps에 달하는 특징 때문. 인텔·소니·프리스케일 등이 UWB칩 개발을 진행 중이다. 이 밖에 최근 개발된 국내 고유의 기술인 바이너리 CDMA는 CDMA(미국식 이동통신)의 무선 전송 신호를 2진수로 변환시켜 전송해 시스템 구조를 단순화시킨 기술이다.


■무선 기술이 가져올 생활 속 변화들

머지 않은 미래에 유비쿼터스 시대가 열리면 우리 생활은 획기적 변화가 올 걸로 예상된다. 특히 센서 기술과 결합된 무선 통신 기술은 건강 관리나 안전 분야 등에 유용하게 적용할 수 있다. 때문에 무선 통신 기술을 개발하는 많은 업체가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도 이들 분야다.

우선 집안 곳곳에 거주자의 생체 상태나 변화를 감지하는 센서를 설치하면, 센서를 통해 수집된 각종 생체 정보를 곧바로 의료기관으로 전송하는 환경을 구축할 수 있다. 지금은 몸이 아프면 병원에 찾아가 검사를 받은 뒤에야 치료를 받을 수 있지만, 유비쿼터스 시대엔 몸의 미세한 변화를 감지해 조기 진단과 치료가 가능해지는 셈이다.

사회가 점점 고령화되는 추세라, 의료기관은 물론 통신업체까지 기술 적용을 통한 시장 확대에 적극 나선 상황이다. 국내에서도 이미 SK텔레콤 등 통신업체·의료기관·의료기 제조사 등 9개 업체가 컨소시엄을 구성한 상태다.

안전 분야에선 교량이나 터널 등 구조물 안전 유지에 응용이 가능하다. 수 ㎞에 달하는 교량이나 터널에 균열·충격 감지 지그비 센서 수천 개를 일정 간격으로 배치한 뒤, 센서에 들어오는 정보를 바로 바로 중앙처리 장치로 무선 전송하면 교량이나 터널의 안전 상태를 실시간으로 점검할 수 있다. 사람이 직접 교량의 안전 상태를 눈으로 확인하려면 수개월로도 부족할 수 있는 한계를 극복하게 되는 셈이다.

또 온도·움직임 감지 지그비 센서를 빌딩 곳곳에 설치하면, 빌딩의 전체 난방이나 조명을 원격 제어할 수 있어 에너지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가 오는 2008년부터 신규 건물에 설치를 의무화한 에너지 절약 장치 설치도 무선 통신 기술의 뒷받침을 받아야 한다. 현재 세계 1000여개 기업이 지그비를 이용한 응용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동차 사고를 줄여줄 것으로 기대되는 스마트 타이어에도 무선 통신 기술은 필수적이다. 스마트 타이어는 기존 고무 타이어에 안전 센서를 장착, 주행 중 타이어의 공기압 정보를 운전자에게 알려주거나 노면의 상태를 감지해 타이어 스스로 최적의 주행 상태로 찾아가는 기술이다.

하지만 유비쿼터스 시대의 핵심인 무선 통신 기술이 활성화되기 위해선 넘어야 할 산도 적지 않다. 블루투스도 산업 표준화 작업은 1990년대 후반 끝났지만, 실제 보급이 확산되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렸다. 때문에 ZigBee·UWB·RFID·바이너리 CDMA 등도 블루투스와 같은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어떤 무선 통신 기술이 성공할지는 소비자에게 얼마나 빨리 접근하느냐에 달려 있다. 무선 통신 칩의 전력 소모량을 크게 낮추면서 싸고 신뢰성 있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처음엔 야심차게 개발되다 이런저런 이유로 실제 상용화가 늦어진 블루투스의 교훈이기도 하다.

(박타준 삼성전기 수석연구원·공학박사)

(김기홍 산업부 기자 [ darma90.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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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e & Soohy 2006. 11. 19. 10:53